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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명된 사실'은 작가 이산화의 단편집이다. 사서 하루만에 읽었다.

 

  나는 이 작가의 작품을 13년 당시의 인터넷의 소설게시판에서 처음 접했었는데 그걸 출판된 형태로 보니 뭔가 다른 느낌이다. 인터넷 게시판을 열람할 때는 거창한 문학성 같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실망감이 들진 않았다. 적어도 내가 처음 읽어보는 단편들에서 예전 작품들을 읽었을 때의 감성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미 읽어봤던 전작들은 거의 변형 없이 그대로 실렸더라.

 

  작품들의 특징으로는 우선 문체가 읽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의 다섯작품들이 좀 더 최근에 창작된 것 같으며 그래서인지 뒤의 작품들보다 더 정교하다. 작품들은 전체적으로는 합리주의적이다. 과학적 요소가 많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상황을 설명하거나, 아니면 해결하기 어려워보이는 문제를 지성으로 해결한다거나 한다. 거기에 낭만적인 요소랑 아주 약간의 트위터 감성도 들어간다. 조금은 코드가 맞아야 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작품들에서는 90년대 외화영화가 연상되기도 하고. 하지만 나머지 작품들은 대게 일상계다.

 

  SF작가로 활동중이긴 하지만 이 단편집에는 SF가 아닌 작품들도 있다. 비장르소설, 추리 등등. 한편 내가 좋아했던 몇몇 작품들이 이 소설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더 괜찮다고 생각하는 단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음에 출판하려고 쟁여놓은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 하나에 이 작가의 모든 스펙트럼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또한 이 단편집은 각 단편마다 바로 뒤에 후기가 나온다. 이 소설이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보통 작가가 나서서 이런식으로 설명은 안해주니까. 단 소설을 읽은 직후의 여운을 즐기고 싶다면 곧바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아직 이산화(이름마저 낯설다)작가의 읽어보지 않은 작품들이 많다. 천천히 하나씩 사서 읽어볼 생각이다.

 

 이 아래로는 각 단편에 대한 리뷰인데,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01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SF가 아니다. 뭐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깔끔하게 끝난 단편이다. 세계를 끝장내고 싶다는 생각. 전작에서도 더 기괴한 방식으로 대량살상을 하는 비SF 단편이 있었으니... 작가의 주 망상레파토리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초반부의 '오펜하이머'의 추리과정까지는 후기 말마따나 청춘 추리물이였는데.

 

 

 

02 증명된 사실

 

 주인공이 불길한 발상을 떠올린 순간부터 바로 뭐가 문제인지 나도 알겠더라. 이 단편집의 표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비로소 알 수 있다. 아이디어가 사실상 이 소설의 절반 이상인데, 그것을 드라마가 정말 최소한으로 지지하고 있다.

  코즈믹 호러로 읽을 수 있다는데 나는 그런 감상을 느낄 수 없었다.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이 들긴 했는데, 심리적 공포보다는 그 상황이 3D 모델링으로 머릿속에서 그려져서. 샤워하고 물 안닦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는 느낌.

 

 

 

03 지옥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

 

  연구자들의 일하는 모습을 담은, 너무나 이과스러운 소설이다. 그렇지만 후기를 읽고 나서야 작가가 의도하려는 바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면 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었다.

 

 

 

04 햄스터는 천천히 챗바퀴를 돌린다

 

  시작부터 사용된 소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문학적 트릭이 사용되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그 장치를 만들어낼 기술이 있다면 도난을 당했어도 다시 만들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만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햄스터가 너무 인상적이라서 그 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었다.

 

 

 

05 한 줌 먼지 속

 

  '텔러'와 접점이 있던 화자가 코스모스를 다시 읽어보는 구성이다.

  일단 고등학교 입시에 대한 묘사는 리얼했다. 내가 학원에서 그렇게 하는걸 봤다는 건 아니고, 그 분위기가.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번째는 학교생활과 입시의 부조리. 두번째는 책 '코스모스'에서 발견한 허무주의다. 현실에서 겪는 부조리가 트리거가 되어서 코스모스의 허무주의를 발동시켰다는 논리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했을 때 제기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가 설명된다.. 자기들이 허무주의에 빠졌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이 작품으로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의 세계관이 더 견고해지는 느낌이라서 좋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 단편의 화자마저 정신 못차린다는 점은 조금 부자연스럽지 않나 싶었다. 코스모스가 무슨 악령의 책도 아니고. 제발 폭발사고에 휘말린 다른 학생들을 애도해줘.....

  

 

 

06 무서운 도마뱀

 

  읽어봤던 소설이다. 주인공이 소설 안에서 소설을 쓰고있다.(세계관 상 그게 진실에 가깝겠지만)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단편소설로서는 꽤 괜찮았다. 처음 읽었을 때 '이런 식으로도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이니까.

 

 

 

07 연약한 두 오목면

 

  역시 읽어봤던 소설이었다. 아주 짧은 소설인데, '증명된 사실'처럼 독특한 발상 하나가 들어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난 또 뭐라고. 그 정도는 결함도 아니죠. 급하니까 빨리 표본 내놓으세요^^"라며 결국은 연구소 직원에게 인계될 가능성도 있다. 주인공은 다시 절망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게 되지 않을까? 농담이다.

 

 

08 우는 물에서 먹을거리를 잡아 돌아오는 잠수부

 

  나는 이 작품이 '증명된 사실'보다 더 무서웠다. 내용 자체는 그럭저럭. 영미 호러소설 읽는 느낌이었다. 그 기반이 작가의 세계관에 있다는 것이 오리지널리티다.

 

 

 

09 카르멘 엘렉트라, 그녀가 내게 키스를

 

  읽어봤던 작품이다. 당시에 꽤 인상적으로 읽었다. 외국 드라마 느낌을 주는 스토리랑 미드위치 자매가 보여주는 이미지가 매력적이었다.

  웹판에서는 자매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장면의 대사가 사선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는 평범하게 줄바뀜만 되어있더라. 책에서는 너비가 좁아서 온전히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각적으로 멋진 시도였기 때문에 그 독창성이 사라진 것은 아쉬웠다.

 

 

10 희박한 환각

 

  읽어봤던 작품이다.

  리아가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 루시는 머리가 좋아. 그리고 리아가는 이제 내꺼야. 뽀뽀쪽.

  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리아가!(거대하고 온몸을 울리는 진동)

 

 

 

11 2억년 전에 무리 짓다

 

  읽어봤던 단편이다. 초반부는 미스터리하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트릭을 알아채기는 힘들 것이다. 밴드의 행방과 그들이 연주한 음악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를 수소문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국 의문은 해결되고 음악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연주가 된다. 전체적으로 잘 구성되어 있는 재미있는 단편이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강력한 여운까지 준다.

이 단편집에서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12 공자가 성스러운 새에 대해 말하다

 

  개인적으로 '2억년 전에 무리 짓다'와 이 작품을 굳이 같은 세계관에 놓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이 소설은 '무서운 도마뱀'과 비슷한 형식인데, 그 상상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그야말로 평범하게 한국적인 일상이다. 그리고 그 일상에서 몇가지 우연들이 낭만적으로 일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제를 지내는데 그것은 정서적인 의지를 넘어선 사건에 대한 존중이라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이것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였다.

 

 

관심있으면 한번 봐보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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