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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첫 수학여행때였을것입니다

 

 

행선지는 전라도 지역의 어느 어촌이였는데 볼만한 것은 바다의 풍경 외에는 그다지 별건 없었습니다

 

 

이른시각 썰물때 입수금지를 전제하에 바닷가에 적당히 학생들을 풀어주고

 

너무 싸돌아다니지 말라는 교사들의 통제로

적당히 모래성이나 만들고 조갯껍데기를 줍고 노는둥

나름 저와 또래들에겐 괜찮은 여흥거리였으나

 

 

가끔 그런것은 성에 못차는 장난꾸러기들이 있지요

해안가를 따라 쭉 걸어나가다보니 아이들의 탐험욕구를 자극하는 동굴이 하나 나왔습니다

 

 

별건 없다는 주민들의 말에 교사들도 어두우니 조심해라,

적당히 둘러보고 나와라 내키는대로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생각치 못한 여흥거리에 흥분한 아이들 너덧명과 함께 그 동굴에 들어갔는데

동굴 안에서 보이는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속에서 손으로 벽을 집어 느껴지는 촉각과 발소리로 파악되는 반향정위만으로

 

겁도없이 어둠속을 나아갔고 일자식 통로였는지 몇십보 못가 동굴의 끝에 도달했으며 여기가 끝인가보다

아무것도 안보이니 빨리 나가자는 아우성이 동굴안을 매웠죠

 

 

물론 저 또한 동감이였는데 이미 출구의 빛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내부는 어두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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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어둠속에서 무엇인지 희끄무레한 실루엣이 일렁거리며

저의 감각을 흐트러놓았습니다

 

그 허여멀건한 무언가가 뭔지도 모른채 그냥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무엇이다 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꽉 붙들어맨 학우의 옷가지를 의지하며 동굴에서 나오는데

그 기분 나쁜 실루엣은 점점 저에게 다가왔으며

 

시선을 돌려도 저의 시각에서 사라지지 않고

눈꺼풀을 덮어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보이는것은 오직 어둠속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희끄무레한 무엇

 

 

그것은 점점 형체를 갖추며 저의 시선 중앙에서 점점 커졌습니다

 

마치 공포에 먹혀 얼어붙은 저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알수없는 흰 그림자였다고 묘사할수있겠군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실루엣이 선명해질 무렵 뒷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제가 선두를 달리며 몇십보 안되는 그 동굴속에서 이를 악물고 달려나왔습니다

 

 

 

바위 그루터기에 다리를 찧였으나 아픔따위를 느낄때가 아니였죠

땅을 집고 필사적으로 기어나오며 그 실루엣의 강렬한 시선이 느껴질 찰나

 

 

 

출구의 빛이 보이더군요

 

 

한번 빛을 보니 실루엣은 사라졌습니다

빛을 몸소 느끼며 안도의 한숨을 느끼며 뒤늦게 느껴지는 통증마저도 마음을 놓게 했습니다

 

 

정말 그 흑암 속에서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아도 점점 천천히 다가오는 알수없는 실루엣

그게 더 커져서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라면 아무래도 상상하고 싶지않군요

 

 

 

그것은 대체 무엇이였을까요 라는 결말도 싫습니다

 

지금에서야 하는말이지만 그 공포는 감히 비인간적이였다고 비로소 말할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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