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https://www.youtube.com/watch?v=7DkIKFGJh14
“안녕?”
“엉?”
“넌 이름이 뭐니?”
“이름? 그게 뭔데?”
“이름 말이야 이름. 아참, 내 이름은 아이작! 이 산 밑에 있는 근처 마을에서 살고 있어.”
“……."
“숲을 헤매다가 어쩌다 엉뚱한 길로 빠져서 이곳에 오게 됐는데, 혹시 밑의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아니?”
“길은 알아.”
“그래? 그럼, 이따 가르쳐 줄 수 있어?”
“길? 뭐 어렵진 않지.”
“진짜?? 다행이다~. 안그래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을로 못돌아가면 어쩌나 싶었거든~. 아참, 이름이 뭐라고 했지?”
“…….”
소년이 웃는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몰라. 그런거.”
“자기 이름을 모른다고?”
“그래.”
“에에?? 진짜??”
“…….”
“넌 새처럼 등뒤에 날개가 달려있네?”
“이거? 뭐, 그렇지. 거추장스럽지만.”
“날 수 있니?”
“못 날아.”
“왜?”
“그야 새가 아니니까.”
“그럼 걸을 수 있니?”
“걸을 수는 있지”
“걸을 수는 있어? 결국 넌 사람이니?”
“아니, 넌 내가 사람처럼 보여?”
“나랑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걸 보면 꼭 마치 사람 같은데. 아니니?”
“생긴 걸 보면 알다시피 난 사람은 아니야.”
“그럼 여우니?”
“여우도 아니야.”
“흐음……. 그럼, 내가 너를 뭐라고 불러줘야 좋겠니?”
“뭐……?”
“너를 뭐라고 불러주면 좋겠어? 보통 날개가 있고 하늘을 날며 살아가는 새를 사람들은 다들 그냥 새라고 부르잖아? 땅을 걸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여우는 여우라고 부르고. 너한텐 새나 여우나 사람처럼 너를 불러줄만한 별다른 말이 따로 없니?”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동쪽 땅에 살던 사람들은 다들 나를 '용'이라고 부르던데.”
“용? 그렇구나~. 그럼 용이라고 불러주면 좋겠니?”
“뭐 상관은 없는데……. 그럼 서쪽 땅에 사는 사람들이 헷갈려 할 거야.”
“헷갈려 해? 왜? 서쪽 사람들은 너를 다르게 불러?”
“서쪽 땅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나를 '드래곤'이라고 부르거든.”
“드래곤??”
“그래.”
“호오~. 뭔가 '용'보다 더 멋있는데?? 그럼, 그냥 드래곤이라고 불러도 되겠니?”
“……마음대로 해.”
“그래? 그럼…… 드래곤!”
“엉?”
“하하핫! 드래곤! 드래곤!”
“뭘 자꾸 불러.”
“넌 참 특이하구나! 드래곤!”
“……난 너가 더 특이해.”
“엥? 나? 내가 왜 특이해?”
“사람이라는 것들은 보통 나를 보면 무서워서 도망가기 바쁘거든. 넌 내가 안무서워?”
“무서워? 왜?”
“……사람들은 다들 너처럼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
“뭐?? 그 말은 설마…… 내가 바보같다는 뜻이니?”
“바보? 뭐, 그렇다면 그런 셈인가…….”
“에에! 너무해! 처음 만나자마자 그렇게 심한 말을! 너까지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바보라고 부르는 거니?”
“다른 사람들도 다들 너를 바보라고 부르나봐?”
“그게…… 응……. 다들 그렇게들 불러…….”
“맞아, 너는 바보야. ……핫.”
“어?? 방금 웃은 거야?”
“글쎄.”
“드래곤!”
“엉?”
“난 언제나 마을에서 다른 어른이나 아이들한테 바보라고 무시당했어. 오늘도 마을 애들한테 나는 산꼭대기에 오르지 못할 거라고 무시당해서 금방 올라갔다가 내려오겠다고 으스댔다가 보기좋게 길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더이상 바보 취급 당하지 않도록 넌 꼭 나한테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해서 내가 무사히 마을로 돌아가도록 해줘야 돼! 알겠니?”
“너는 바보에다 제멋대로이기까지 하구나.”
“에에! 어째서?!”
“말로 하는 거면 몰라도 안내까지는 못해줘. 넌 내가 지금 이 덩치로 너를 안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그야…….”
“만약 내가 너를 안내해주다가 마을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이 다들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겠어? 분명 다들 무서워할 거야. 넌 그러길 바라는 거야?”
“흐음…….”
“내가 여기서 이러고만 있는 건 괜한 이유가 아니야.”
“그러니……. 다 이유가 있었구나.”
“당연하지.”
“그럼, 앞으로도 쭉 이곳에 있을 거니?”
“글쎄. 사람들이 나를 발견해서 내쫓지만 않는다면 계속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 그럼, 드래곤!”
“어엉?”
“길은 그냥 알려주기만 하고 안내까진 안해줘도 돼. 그 대신, 내일부터 내가 매일 여기에 와도 되겠니?”
“뭐어? 어째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건데? 얼렁뚱땅 니 맘대로 정하지 말아줄래.”
“어차피 이곳에서 혼자 지내봤자 그다지 할 일이 없는 거 아니야?”
“할 일이 왜 없어. 낮에는 낮잠도 자야 되지, 밤에는 별도 새야되지. 얼마나 할 일이 많은데.”
“난 언제 온다고는 아직 얘기 안했는데?”
“아무튼 난 바빠서 그건 곤란해.”
“그러니……. 난 사실 마을에서 있을 곳이 없어서 그래.”
“엉? 그게 무슨 말이야. 마을에서 왔다며. 그럼 그냥 마을로 돌아가서 있으면 되잖아.”
“난 마을에서도 늘 바보 소리를 듣는 애야. 매일 멍하다, 딴 생각 한다 해서 마을의 어느 누구도 나한테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아.”
“…….”
“일을 맡아도 남의 얘기가 들리지 않는지 나도 모르게 계속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하고 그래. 내 생각엔, 난 그 마을에서 살고 있는 건 맞지만 꼭 마치 죽은 것처럼 있을 곳이 없는 것 같아.”
“그러냐. 하지만 넌 살아있는데?”
“어째서? 다들 나를 깔보고 무시하고 나한텐 아무런 일도 맡기지 않고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데도?”
“그럼 넌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냐?”
“엥? 너? 살아있잖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째서냐니, 그야……. 나랑 이렇게 얘기도 나누고 있고,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그리고…… 숨도 쉬고 있고…….”
“그 말대로야. 난 살아있어. 하지만 나도 너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아.”
“…….”
“나도 원래는 내 주변에 나랑 비슷하게 생긴 드래곤들이 있었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그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왔어. 왜라고 생각해?”
“글쎄.”
“다른 드래곤들은 다 자기보다 강한 뭔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나거나 해서 뿔뿔히 흩어졌어. 그리고 이곳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된 거야.”
“…….”
“결국 나도 너랑 같아. 원래 있어야 할 곳을 잃어버리고 무언가로부터 쫓기고 도망다니고 도망다니다 결국 이 외진 숲속에 될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눌러 앉은 거야.”
“…….”
“나라고 해서 다를까? 너나 다른 사람이라고 해서 다를까? 새라고 해서 다를까? 여우라고 해서 다를까? 결국 다 똑같아. 다들 원래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다니지만 사실은 그냥 다 떠돌이나 다름없어.”
“……그럼, 난 그 마을로 돌아갈 수 없어. 돌아가기 싫어. 더는 바보라고 무시당하는게 무서워.”
“돌아가고 안 돌아가고는 네 마음이지만 넌 결국 일단은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거야.”
“……너는, 참 강하구나 드래곤…….”
“강해?”
“난, 이렇게나 몸집도 작고 허풍쟁이에 겁쟁이인데…….”
“…….”
“만약에 내가, 너처럼 크고 긴 날개랑 거대한 몸집을 가졌다면, 마을 사람들도 더는 날 놀리지 않았을텐데…….”
“바보.”
“에에?! 또 바보라고 했어?!”
“그래. 바보라고 했다. 넌 바보야. 아까 전에 내가 했던 얘기 제대로 듣기나 한 거야? 나는 나의 큰 덩치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한테서 따돌림 당해왔어. 나는 나랑 같은 드래곤들이랑 모여살때도 이 큰 덩치 때문에 사람들한테 들킨 탓에 사람들이 나랑 동지들이 살던 둥지로 쫓아와 동지들을 전부 다 몰살 시킨 적도 있어.”
“…….”
“그리고 그렇게 도망다니고 도망다니다가 어느새부터인가 이 산 중턱에 혼자 자리를 잡은 거라고. 도대체 네가 내가 고생한 옛날 일들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
“넌 애야. 그것도 아주 어린애. 너가 네 엄마 아빠랑 같이 사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너한텐 너를 돌봐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꼭 너의 핏줄이나 동지가 아니어도 지금까지 너가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전부 다 너의 그 주변 사람들이 너를 돌봐주고 지켜줘서라고는 생각 안 해??”
“…….”
“매일같이 동지들도 핏줄들도 하나 없이, 매일같이 혼자서 개울가에 몸을 담궜다가 물속 짐승을 잡아먹고, 매일같이 수풀을 돌아다니는 아무 들짐승이나 잡아먹는 나의 삶에 대해 너가 알기나 해? 넌 요만큼도 모를 거야. 너는 너의 그 어리고 작은 몸집만큼 절대로 나의 이 크고 늙은 몸집안에 있는 크나큰 고민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
“…….”
“돌아가 봐. 적어도, 너한테는 너를 반겨줄 누군가가 하나쯤은 있잖아?”
“하지만……. 돌아간 이후로도 사람들한테 무시당하면…… 나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아. 너무 괴로워.”
“……좋아. 그럼, 이렇게 하기로 하자.”
“어?”
“지금, 내 날개의 깃털 하나를 뽑아서 너한테 줄게.”
“깃털?”
“그래. 그럼, 내 깃털을 마을안으로 들고가 마을안 다른 아이들과 어른들한테 보여주면서 네가 네 힘으로 직접 드래곤한테서 드래곤의 깃털을 뽑아왔다고 자랑하는 거야. 그럼, 마을 사람들도 이후로는 더이상 널 괴롭히지 않겠지?”
“어어??”
“자, 가져가. 내 깃털이야.”
드래곤은, 자신의 날개로부터 깃털 하나를 입으로 뜯어낸 뒤 소년 앞에다 올려놨다.
“새의 털이라기엔 많이 크니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어줄거야. 만약, 사람들이 이 털이 드래곤의 털이라는 걸 믿지 않는다고 쳐도 이만큼 큰 털을 가진 새도 발견하긴 힘들테니까 넌 마을사람들로부터 큰 새를 발견했다며 영웅 대접을 받겠지?”
“드, 드래곤…….”
“엉?”
“고마워!! 진짜! 정말로 고마워!! 드래곤!! 넌 내 생명의 은인이야!!”
“뭣……! 야, 저리 떨어져! 뭐하는 거야! 뭣! 야!”
소년은 그 깃털을 받아든 뒤 어느새 드래곤의 콧잔등 위로 기어올라가 드래곤을 있는힘껏 껴안았다.
그렇게, 드래곤에게 철썩같이 달라붙어 고마움을 표시한 소년은 얼마간 드래곤과 꼭 붙어있다가 이후, 드래곤이 알려준 길대로 무사히 마을로 내려가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년은 마을로 돌아간 이후로도 드래곤의 깃털을 마을의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마을의 어느 누가 깃털을 보게 된다면 혹시라도 마을 어른들이 그 사실을 알게되어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 나서고 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년은 그 대신, 드래곤을 만나고 마을로 내려간 이후부터는, 마을의 어느 누구한테든 놀림을 받을때면 언제나 사람들에게 당당히 따지거나 덤벼들었다. 또, 이후로도 소년은 공부와 몸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어느새부터인가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 마을의 어느 누구도 더이상 소년을 깔볼 수 없게 되었다.
소년은 청년이 된 이후 마을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모험을 떠났고 어느 한 지역의 큰 성안에 정착하는데에도 또한 성공하여 한 평민 여성을 만나 그 성에서 두명의 사내아이를 득남했다. 그리고, 가장으로서 한 평생 자신의 아내와 가정을 돌보고 지키다가 생을 마감했다.
소년은 자신이 생을 마치는 마지막 날까지 한 평생 그 드래곤의 깃털을 자신의 방 어느 한켠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의 두 아들들에게만 그 깃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놨고 그 깃털을 성내 박물관에 기증해달라고 유언했다.
이후, 두 아들은 그 깃털을 자신들의 아버지의 유언대로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그 드래곤의 깃털은 이후 수많은 성안팎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감탄을 자아내어 성내의 문화재로까지 지정되게 되고 해당 드래곤의 깃털을 보관한 박물관 역시 성내 최고의 명소가 되었다.
이후 박물관은 소년이 죽은 날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소년과 드래곤의 우정을 상징하는 「소년과 드래곤」이라는 이름의 동상 또한 박물관 앞에 세웠다.
이 동상 또한 드래곤의 깃털과 마찬가지로 성을 상징하는 최고의 상징물이 되었다고 후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길이 전해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