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경에 놓인다고 해서 특별하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아무 생각을 하기 싫어하는 편이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나는 아마도 습관을 잘못 들인것이 틀림없다.
생각을 하기 싫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불리하다. 물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과거의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아니면 과거의 나는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던 것이 틀림없다.
캐치하다는 것과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동치로 볼 수 있을까. 적어도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사물의 특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이해하는 만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이해하거나 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그것의 본질적 특성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금'에 대해서 논한다고 할 때 나는 미국의 골드 러쉬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이 야기한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다스 왕과 올림픽의 메달에 대해서, 그것이 순수하게 지니는 금전적 가치에 대해서, 귀금속으로서의 가치와 물질적 특성과 디지털기기에서의 활용 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글쓰기이다. 금이 어떻게 생성되는지, 왜 희귀한 금속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금이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인류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 금은 그렇게 아름답고 가지고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단지 그것이 꽤 비싸다는 것만은 상식적으로 안다. 나는 내 관점에서 나름대로 매혹적이다고 느끼는 대상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사람들마다 다른 듯 한 모양이다. 인간의 의식이 보편적 진리에 의해서 어느정도 통합적인 양상을 띈다면 이는 설명하기 힘들다. 인간 각자가 지닌 욕망의 다양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욕망을 지니고 있는가? 내게 욕망이 있다면 나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한다. 요즘 주변 사람들은 휴가를 언제 가냐고 자주 물어본다. 나는 그 질문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오히려 관심을 가져주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그러나 어딘가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는 않는다. 내가 여행을 직접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지금도 이상한 일상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은 이미 망가져 있어서 여행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여행 이야기는 아무래도 되었다. 나는 산책을 나갈 거니까. 금도 아무래도 되었어. 금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유명인이 누가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