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서 없으면 아예 건드리지를 못하고(건드리지 않고)
정신적이든 일 하는것이든 특정 경로가 있으면 그 경로에만 의존하려고함
대중적인 채널을 통해 알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절대 모름
한국은 원래부터 그랬었지만 점점 갈수록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도 많아짐
옛날 영화, 게임, 배우, 역사 이런것들도 기회가 되어서 알게되지 않으면 왠만해서는 모름
한국에서 영국이 섬나라인거 몰랐던 해프닝처럼 뭔가 목적이나 이유가 없다면 언제까지나 정지상태임
그래서 가면 갈수록 무지하고 무식한 인간들이 엄청 많아지는것 같음
두들기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으며 목적이나 이유같은게 없으면 움직이지 않음
딱 자신이 있는 층위에서만 지식들을 효율적으로 알게되는것 같은데 그렇게 되어지는대로 편하게 경로 속에서 살다보니 능동성이 사라지고 수동적이게 된것 같음
이걸 회복 탄성력이라고 해야되는지 모르겠는데 찰흙 반죽 한번 누르면 그 모양 그대로 쭉 가는것처럼 어떤 일 벌어지면 그대로 쭉 감
집단에 어떤 인식이 심어지면 그 인식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언제까지나 그대로임
예를들어 예전에는 집단에 어떤 사실관계가 어설프게 밝혀지거나 잘못 정해졌어도 1차 사료들이 존재한다면 시간속에서 다 밝혀졌는데
요즘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잘못 형성된 인식이 그대로 쭉 이어짐
약간 부당하거나 불편한 시스템을 만들어놓아도 그대로 쭉 이어지고, 어떤 상처를 받거나 내상을 받으면 그대로 쭉 이어짐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수업때 어떤 학생이 고추 드러내며 장난치니까 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신병원 치료받은게 그 예임
마치 찰흙처럼 외부에 의해 한번 눌러지면 언제까지나 눌러진상태이고 외부에 의해 한번 모양을 설정하면 언제까지나 모양이 그대로인 상태임
이상한 어린애 그림 갖다놓고 100만 달러라고 다들 박수치면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함
어떤 정치인에 대해 프로파간다가 행해져서 1차 사료들이 분명 존재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쉽게 접근할수 있음에도 언론에 의해 오해를 받다가 퇴임하게 되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언론에서 형성한 그 이미지상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
그 인식을 바꾸려면 외부에 의해 채널들을 가동해서 이미지상을 학습시켜야됨
그러면 그 학습된 이미지는 나중에 다른 존재가 바꾸지 않는 이상 그대로 언제까지나 쭉 이어짐
만약 다른 존재가 꾸며낸 서사속에서 약간의 소스를 교묘하게 해석해 반대의 이미지상을 학습시키면 그 이미지상으로 쉽게 바뀌며 그게 그대로, 20년이 지나더라도 쭉 이어짐
게다가 어떤 인물이나 국가나 사물에 대해 평가할때도 어떤 틀같은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좋은점, 나쁜점 이 두가지것에만 구분지어 판단하는것 같음
한 인물의 여러가지 점을 보고 입체적으로 상을 만들어야되는데 어떤 체제같은것에 의존하면서 사고를 하다보니 단순 직선적으로 좋은놈, 나쁜놈식에서 벗어나질 못함
이런 사람들이 좀 깨어있다 싶어봤자 대중들이 경로의존적으로 별생각없이 판단한것에 대해 일단 거부하는방식일뿐임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아니라는, 기껏해야 대중이 생각없이 만든 경로에 대한 반발을 포맷으로 하는것인데 이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일단 반박하는 형식'에 의존하는 형태임 (모양만 놓고 보자면 마치 90년대 미국 영화에서 나온 반지성주의랑 비슷함)
근본적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쉬운길을 택하는것인데 어찌되었든 무의식적으로 형식에 의존하는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이런 존재들이랑 토론을 하게되면 먼저 엄청나게 많은것들을 알려줘야만 됨
왜냐면 극단적인 효율성에 의해 눈에 보여지는, 학습 되어지는것들만 알고있는 인간들이라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면 그 뿌리되는 다른것들도 피곤하게 일일이 알려줘야되기 때문임
그리고 중심된 기준점이나 올바른 방향의 시각에 대해서도 알려줘야됨
근데 눈에 보이는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양자역학같은 이런 존재들은 그 양태 특성상 상대주의적인 성향이 있기 때문에 그 기준점조차 필요가 없으면 이유를 못느낌
대중에 의해 공인되거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필요성이 있어야만 현상을 해석하는 기준점이 용인되는것임
그래서 미국같은 경우는 언제나 궁극적인 최종 결착점은 신의 존재 유무로 이어짐
왜냐면 인간은 당연히 자유를 누리고 싶고 경제성의 원리 안에 있기 때문에 여러 기준점들중 특정 하나의 기준점을 따라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없기 때문임
허용되는 범위내에서 스스로 억누르는 인간은 없는데 이 동향없는 존재들이 인지하는 범위가 눈에 '보여지는' 영역뿐이니 어찌보면 당연한것임
예를들어 남자가 여장을 하는 일본이나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하며 빌붙어 먹고사는 태국 등이 있음
그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면 그 주장에 뒷받침되는 근거가 있어야되는데 그 근거는 사회보편적으로 아무쓸모도 없고 따라야될 필요성도 없기 때문에 주장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것임
그래서 미국같은경우는 동성애, 레즈비언, 온갖 무슨무슨 주의자들이랑 얘기 나올때 대부분 신 얘기가 나옴
그리고 근본적으로 동향이 없고 정적이기 때문에 뿌리나 선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축적은 기대하기 힘듬
100에 대해 알려주면 100만 알뿐이고, 1000에 대해 알려주면 1000만 알뿐임
어떤 현상과 그 이면의 논리들에 대해 알려주면 딱 그것만 알뿐임
이들에게는 커튼 먼지떨때 관성의 법칙을 적용시켜도 자동차 운전할때는 적용 안됨. 만약 자동차 운전할때도 그 법칙을 적용시키려면 또 거기에다 적용시켜야됨
이들의 삶의 방식이 1000가지라면 1000가지 다 일일이 관성의법칙을 적용시켜야됨
그래야 겉으로 그럴싸하게 모양이 완성됨
그러나 그것 또한 필요성이라는 대원칙하에 있기 때문에 만약 반대편에 자극이 더 쎈것이 오면 커튼 먼지떨때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지만 자동차 운전할때는 다른 법칙이 적용됨
그때마다 영역마다 상황마다 필요성과 경제성 등의 원리에 의해 무게가 무거운쪽을 택하기 때문임
어디 갤에서는 '한국인이 메뉴얼적'이라고 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점점 가면갈수록 사람이 정적으로 되어가고 있음
이 정적이라는게 무슨소리냐면 일상의 사고, 인지, 행동 등이 어떤 틀같은것에 의존해 이루어진다는 뜻임
딱딱하고, 뻣뻣하고, 재미없고, 김이 새고, 학습하는것 같고, 단순 직선으로만 이해하고 반응하는 등
이 단면적이고 김빠지는 인간들이 돈을 벌기 위해 컨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간들도 똑같다보니 자연스레 어떤 컨텐츠든지 포르노처럼 되버린것 같음
인종주의에 대한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 어떤 드라마를 시청한다던지, 차량 추격씬이 좋아서 차량추격씬이 있는 영화를 본다던지, 순식간에 빠르게 순간이동으로 이동하며 자동사냥으로 뭔가 성장하는듯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모바일 게임을 한다던지, 미소녀 캐릭터 그림이 많이 나오고 도박요소가 있는 카드게임을 한다던지 등등
그게 연출이든, 전개방식이든, 가치관이든, 스토리든, 인물 피부색이든, 노출 여캐릭터든 뭔가의 요소들이 조합되어 제시되는 형식인데 가면갈수록 효율성을 추구하다보니 알맹이만으로 원하는 쾌락을 누리는 모양으로 됨
그래서 점점 일종의 요소들이 조합된 포르노같이 되어버림
이 알맹이 포르노적인 행태는 컨텐츠 자체에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보이는데 예를들어 애니메이션 20분짜리를 5분짜리 요약본으로 본다던지, 1시간짜리 롤 경기를 15분짜리 요약본으로 본다던지 하는식이고
뭔가 영화나 유튜브같은걸 보면서도 10분쯤 지나 인터넷 댓글이 궁금해 잠시 확인하거나, SNS를 하면서 영상도 보면서 다른것들을 하거나, 영화나 만화 등이 조금만 지루해져도 금새 다른 플랫폼으로 시선을 돌리거나, 지역 순간이동이 없는 게임은 아예 안하는 등 가면갈수록 심해지고 있음
조금만 자극이 없고 지루해져도 왜 봐야되는지 이유를 못느끼니까 자연스레 손에 쉽게 닿는 다른 채널로 옮겨버리기 때문에 컨텐츠는 늘 자극적일수밖에 없음
개인적으로 포르노의 영역이 일상 전반에 걸쳐 확장된것이라고 생각함
정치의 영역에서도 한국은 조금 어설프긴 하지만 다른 나라들 보면 원하는 자극과 충족의 면을 놓고 보자면 개념적으로 포르노적인 회로로 접근하는것 같다는 인상을 받음
과거에 어떤 법률안에 찬성을 했다던지 어떤 정책에 승인을 했다던지 하는것들을 스스로 알아보고 파악하는게 아니라 정리된것에 의해 파악되어지는 방식이고, 정치인에게 호감을 느끼는것도 현실에 기반하는게 아니라 방송을 통해 형성된 도파민적인 만족감에 기반하는듯한 느낌임
그리고 그 이유는 눈에 보이는 영역내에서 너무나 극단적으로 효율적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