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예시로 들어 보겠습니다. 존스가 어느 파티에서 주량이 넘는 술을 마시고 브레이크가 고장난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다가, 전방이 막힌 사각지대에서 모퉁의 가게로 담배를 사러 길을 건너던 로빈슨을 차로 치어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혼란이 가라앉은 뒤 우리는 -이를테면 경찰서에- 모여서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운전자가 술에 취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이는 형사사건이 될 것입니다. 아니면 브레이크 고장 때문일까요? -그러면 이건 1주일 전에 차를 점검한 정비소의 문제일 것입니다. 혹은 운전자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였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도로국의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주제에 논의하고 있는 와중에, 이름난 신사 두 사람이 방에 난입해서 로빈슨에 담배를 사러 외출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길을 가로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차에 치여 죽을 일도 없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더 나아가 로빈슨의 흡연욕구가 사고의 진정한 원인이고 이 이외의 조사들은 전부 무의미하고 쓸모없다고 청산유수로 떠들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는 두 신사들의 거침없는 웅변을 간신히 가로막고, 두 손님을 정중히 그러나 강력히 문쪽으로 밀고 가서, 그 둘을 다시는 들이지 말라고 경비에게 명령한 다음 다시 우리의 조사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훼방꾼들에게 무슨 답을 줄 수 있을까요? 물론 애연가였기에 로빈슨은 죽었습니다. 역사에서 기회와 우연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진실이고 논리적입니다.


거기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나 볼 수 있는 가차 없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 소설은 훌륭한 작품들이지만 그 소설의 방식은 역사의 방식이 아닙니다.”

'역사는 무엇인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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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고노미코야야미 2022.03.14 04:06
    소설이나 영화는 정제된 플롯이 있지만 현실과 역사는 그렇지가 않지..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공황발작이 올 것만 같은 답답함이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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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winnjäger 2022.03.14 04:11
    그래서
    난잡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단순화-수치화 하려고
    이론으로 현실을 바라보려는게 아닐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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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고노미코야야미 2022.03.14 04:23
    이거 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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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고노미코야야미 2022.03.14 04:24
    사람을 하나의 성향이나 사상으로 재단하려는 것도 그런 느낌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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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winnjäger 2022.03.14 04:45
    그렇지만 현실을 이론에 지나치게 짜맞추려 하다보면 잘못된 해석을 하기도 해서..
    좀 딜레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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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네흥 2022.03.14 04:34
    호오
    근데 읽어도 오.. 하는게 다인 나는 나의 수준에 눈물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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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winnjäger 2022.03.14 04:45
    (나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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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スペクトラ 2022.03.14 07:30
    마치 우크라이나와 누군가의 사태를 보는 듯한.... 글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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