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인 플롯은 다 짰는데 언제 완성할지 영영 알 수 없어서
일단 네오에 올려봄
계속 쓰게 된다면 이 글은 삭제할듯
10분의 1 정도 쓴 느낌
https://youtu.be/uURB-vo9rZ4
01
큐가 앞 뒤로 움직이다 공을 밀어낸다. 노란색 공은 다마 위에서 여러번 충돌을 일으킨 후에 느려져갔다. 방금 차례였던 그녀의 표정이 별로 좋지않다. 토끼귀를 머리에 달고, 참외처럼 보이는 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였다. 공이 멈추자
"아쉽네~"
라고 다른 여자가 말했다. 파란 자켓에 파란 머리를 하고있는 그 여자가 당구대를 고쳐 잡는다. 뒤편의 의자에서는 강아지 귀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구를 치고 있군요."
그 자리에 또 다른 여학생이 다가간다. 한 손에 액션캠을 든 그녀는 머리에 빨간 모자를 쓰고, 흰 티셔츠에 검정 치마를 입고있었다.
"재미있어요."
초록머리의 강아지귀 여자애가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한 것도 잠깐, 그 카메라를 든 소녀는 카메라를 돌렸다.
"서진이언니. 게임이 잘 되고 있나요?"
의자에 앉아있는 토끼귀에게 카메라녀가 질문한다.
"하나도 안돼. 오늘 컨디션 별로야."
"안됐네요."
파란 머리가 흰 공을 쳤고 그 공은 그녀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줬다.
"저 쳤어요."
토끼귀는 당구대를 흘깃 쳐다본다.
파란 머리가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루미. 나 서진이랑 당구친 지 좀 됐는데 얘 진짜 못쳐. 실력 형편없다니까?"
토끼귀가 말을 내밷는다.
"에이 거지같은 게임."
파란 머리가 웃는다.
"앗... 화나신 것 같다."
액션캠에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실시간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채팅은 빠르게 올라갔다. 시청자수는 800 위아래를 오락가락 하고있었다.
펜션 내부에는 백여명의 소녀들이 있다. 노래방 기기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같이 음료수를 마시면서 잡담을 하는 사람들. 펜션 전체를 울리고 있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난을 친다고 쫓아가거나 도망다니는 사람도 있다. 성년자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술을 마시기도 하였다.
".... 정말로 실력이 나쁜것인가? 그리고 화가 엄청 많이 난 것 같다. 등의 반응이 올라오고 있네요."
"너는 여기 왜 와가지고. 아! 진짜로 별거 아니에요. 저 화 안났어요. 방송 즐겁게 봐주세요. 그리고....저.. 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서진은 미소지으며 어색한 포즈를 취했다.
"오. 갑자기 돌변한 모습!.. 물음표들이 많이 올라오네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 즐겁게 노세요. 언니."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루미언니는 누가 이길 것 같아요?"
강아지귀 소녀가 카메라 안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어.. 단희구나? 그건...... 비밀! 당구장은 여기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총총."
카메라녀는 다른 곳으로 갔다.
"앗. 가버렸다. 그래도 서진언니는 제가 응원할께요.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에요!"
그말을 들은 서진은 멋쩍게 웃는다.
펜션의 다른 쪽에서였다. 민영은 벽에 걸린 시계를 한번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곳 좀 둘러볼께요."
맞은 편의 핑크머리가 말했다.
"흥. 우리가 별로 재미없었나?"
"아뇨. 그렇지 않아요."
"야. 무슨 말을 그렇게하니? 오히려 같이 있어줘서 고마웠다고 해야지."
옆에 앉아있는 금발의 아가씨가 그렇게 말했다.
"흥.. 그래. 가도 좋아. 아니. 간다고 허락 받아야 하고 그런것도 아니고."
"네. 그럼."
민영이 자리를 떴다. 금방 다른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다.
핑크머리는 딴 곳을 잠시 바라본다.
"너는 얼마나 잘났다구."
"아니 나한테는 왜? 너 이야기를 가장 잘 들어주는 사람은 나라고."
남은 두 사람은 에휴니 쯔쯧이니 등의 추임새를 넣어가며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사실 민영에게는 가야할 곳이 있었다.
"잠시만!"
민영의 옆을 가볍게 치고 황급히 달려가는 파란 옷의 여자. 그 뒤를 쫓는 금발의 여자가 보인다. 쫓기는 쪽이 등에 매달고 있는 커다란 날개를 보며 그녀는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렇게 급하게 도망가는 와중에도 잘도 안 떨어지고 붙어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랑살랑거리는 날개를 보는 것도 잠시 다른 여자가 그 둘을 향해 소리쳤다. 녹색 머리에 단신의 여자였다. 손에는 문양이 새겨진 막대기를 들고 있다.
"펜션 안에서 뛰어다니지 마세요! 위험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파란 옷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있는 펜션 안의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추격전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민영은 어떤 문 앞에 도착했고 노크를 했다. 안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린다.
"들어와"
문을 열자 방 안으로 바깥의 소란과 음악소리가 밀려들어왔다. 다시 문을 닫자 수조관에 들어간 것 처럼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문을 잠갔다. 민영은 방 맞은편의 책상에 앉아있는 여자를 보았다. 펌퍼짐한 핑크색 옷에 핑크색 모자에는 초승달이 달려있다.
"수연언니. 책을 읽고 계셨군요."
그러자 수연은 처음으로 책에서 눈을 떼고 앞에 서있는 민영을 보았다. 그러고서 다시 책으로 눈을 가져간다.
"뭐. 나는 시끄러운 것과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이때 다른사람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텐데요."
"어차피 정기모임에서 대충 다 알고지내니까. 굳이 그럴필요 없어."
그녀는 책을 덮는다. 민영은 그 책을 흘깃 본다. '몬테크리스토 백작 4권' 이라고 적혀있다.
"제가 무슨일로 온 건지 아시죠?"
"내가 방금 읽던 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야. 재미는 내가 보장해. 원한다면 1권부터 빌려줄 수 있어."
"흠. 시간이 되면요."
"너가 와서 이 재미있는 책을 읽을 시간을 뺏겼잖아."
"언니도 참. 우리는 아직 젊고 그 책은 나중에 읽어도 되요. 그리고 그거 무슨 평론이에요? 자서전?"
"...... 소설이란다."
민영은 계속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농담이죠. 농담. 사실 알고있었어요. 그래요. 하지만 제가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민영은 수연의 맞은편에 의자를 가져와서 앉는다.
"굳이 말하자면 소설같은 제 경험담이죠. 하지만 언니는 소설로 제 이야기를 치부해도 되요."
"그런게 어딨어. 논픽션이랑 픽션이랑은 엄연히 다르다고."
"맞아요. 하지만 이것은요, 제가 살면서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에요."
"그렇구나. 그걸 나한테 이야기하려는 이유는?"
"우선 '신환상주의'랑 관련된 이야기라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말하기 어려운 점이 있죠. 그리고 언니가 그나마 믿음직스럽고 그 와중에 지식도 많고 머리도 좋으시니까요."
수연은 그렇게 말하는 민영을 보면서 '뭐 그건 그렇고 민영이는 역시 오늘도 멋있네' 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떠올렸다.
"좋아."
"무엇보다 저 혼자 이 이야기를 품고 있기엔 마음이 너무 비좁았단 말이죠."
하얗고 검은색이 복잡한 무늬가 끝없이 새겨져있는 터널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고 있었다. 터널을 달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추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난 길이의 터널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그리고서 한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떤 공간에 있는 '그 여자'가. 안 보이는 누군가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고 있는 듯 했다.
알람소리에 민영이 일어난다. 그녀는 꿈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시간은 늘 정신없었다. 그녀는 콘후레이크를 먹는다. 우유에 타서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따로 먹는다. 그렇다면 그녀의 위 안에서 섞이겠지. 그녀는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했다. 꿈에 대해서도 조금은 생각했다. 그녀는 꽤 멋있고 쿨해보였다. 옷차림이나 그 표정이나. 그 일상에서 보기 힘든 옷차림에 그녀는 일탈과 같은 감정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은.
늦은 오후. 무신경하게 수업을 듣고있는 민영이였다. 지구과학 수업이라 과학연구실로 이동해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전부 필기수업이었으며 민영은 평소에 그랬듯이 처음 20분정도는 열심히 듣다가 곧 집중력을 잃고 멍을 실컷 때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필기만 할거면 과학실로 이동은 왜 하는걸까. 새로 신축한 별관에 위치한 과학연구실은 매우 깨끗한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조금은 쓸데없다고 느껴졌다. 뭐. 나중에는 쓸데가 생기겠지. 앞으로 이 실험실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도 신경을 쓰지 않을까? 근데 물리과목 실험이 있으면 물리실험실에가고, 화학과목 실험이 있으면 역시 화학실험실에 갔다. 아무리봐도 이 교실이 활용도가 높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곳은 역시 누군가의 비밀아지트가 되기 딱 좋은 장소인 것 같다. 그녀가 보아왔던 소설속에서 이곳은 천재 이과생의 비밀 실험실이 되기도 하고, 교내 커플의 아늑한 공간이 되기에도 좋아보였다. 여기에서 몰래 숨어서 만약 연애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좋아하는 남자애와 몰래 들어와서 손을잡고, 서로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칠판을 보던 민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늦은 오후, 신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된 때였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이상한 무언가가 자리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 속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민영은 갑자기 그 꿈이 왜 다시 상기되었는가 생각해봤으나 딱히 까닭을 찾을 순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본래 기억이란 그런 식으로 반짝 하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니까. 본래 인간의 정신작용은 심오하기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인 자신이 온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운 것이라 민영은 믿기로 했다. 청소를 마치고 지희와 같이 만나서 버스를 타고 같은 정거장에서 내려서 이야기하면서 걷다가 헤어진 후 집에 들어갔다. 늘상 있는 일이었고 오늘도 그러했다. 단 지희에게 꿈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맥락없이 터널을 통과하니 눈에 보이던 이름모를 그녀. 흰 종이를 피고서 꿈 속에서 본 여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샤프를 쥐었다. 샤프로 스케치를 하고 색연필로 채색을 했다. 단색의 벽을 배경으로 서 있는 그의 오묘한 눈빛. 무엇보다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잡한 옷의 디테일이 놀랍게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 이미지를 바쁘게 묘사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욕구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세밀한 기억이라고 해도 무의식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렸을 것이라는 것을. 민영은 그림 속 그녀와 같아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02
"어때?"
민영과 지희가 돈까스 집에서 같이 나왔다. 민영은 입을 살짝 삐죽거리며 말한다.
"내가 직접 튀겨서 먹는게 더 맛있을 것 같아."
"그건 그야 너가 요리를 잘하니까."
"아니, 그거랑 상관없이 맛이 없어. 들어봐. 민영의 돈까스지론. 그 첫째. 과하게 기름지면 안된다. 둘째. 소스가 맛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곳은 둘째까지 갈 필요도 없어. 물론 둘째도 불합격이지만 말이야. 게다가 기름져. 곧바로 탈락이지."
"내가 입맛이 싼 걸까, 아니면 너의 입맛이 까다로운 것일까?"
구름 한점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며칠간 오던 비가 막 그친터라 그렇게 덥지도 않아서 바람쐐기엔 안성마춤이었다. 역전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둘은 코인노래방에 가려는 참이었다. 민영은 노래방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지 가볍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파 사이에서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하얀 긴 치마에 하얀 상의. 하얀 모자까지. 지그재그 빨간 선이 그어져있는 긴 치마. 엄청 폭이 넓은 소매 또한 눈에 들어왔다. 가장 이상한 것은 당연히 등 뒤에 있는 3쌍의 흐물거리는 날개였다. 그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걷고 있었다.
"어? 저 사람봐. 코스프레하는 건가?"
민영은 크게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민영아?"
"어. 응. 그런 것 같은데?"
"날개까지 달고있네. 난 저러고 있으면 부끄러울 것 같은데."
지금의 유행과는 다른 만화같은 디자인, 뭔가 야릇한 디테일이 그녀와 민영 자신이 비슷한 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했다. 하지만 민영은 신중해지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따라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뭐. 자기 마음이니까."
"신기하다. 나 저런거 처음 봐. 근데 혼자인 것 같은데, 먼저 와서 다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걸까나."
"어쩌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로 잡고있는 사람이 숨어있을 지도 모르지. 망원렌즈 같은걸로. 여기에서 보이지 않는."
"뭐 그럴지도. 근데 저거 애니메이션 캐릭터인가?"
민영은 그녀를 향한 진심어린 부러움을 애써 억누르고 희연의 말에 대답했다.
"글쎄. 내가 알고있는 캐릭터 중에는 없는 것 같네."
"그렇지? 나도 그래. 그건 그렇고. 아. 뭐 부를까."
날씨가 꽤 무더운 것 같다.
"너 얼굴이 좀 붉다. 괜찮아?"
"응? 아니야. 안에 들어가면 괜찮겠지. 물이라도 사서 마시면 되려나."
하지만 만약 저 사람이 나와 같은 처지라면? 한달동안 그녀는 스스로에게 미쳤다고, 정신나갔다고 힐난해왔다. 그 이상하고 기괴한 욕망 때문에 그동안 어떤 일들을 벌였는지 돌아보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녀는 애써 태평한 척을 하였다. 민영과 지희는 그대로 코인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 노래를 부르다가 민영은 지희에게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오겠다고 말하면서 나갔다. 나가는 민영에게 지희는 몸이 돈까스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곧바로 내보내려 하는거냐고 놀린다.
지희와 헤어지고 민영은 집으로 돌아왔다. 택배가 와 있었다. 옷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방문을 닫고 옷을 입어본다. 이 옷을 만든다고 몇 번을 샵에 방문했었는지. 지하철을 몇번이나 타고 학원 없는 날마다 왕복했었는지 말이다. 하의와 상의를 차례대로 입고, 악세서리를 착용하였다. 악세서리들은 맞춤제작한 것도 있고 비슷한 것으로 사온 것도 있었다.
"동생. 오빠 스캐너 좀 쓰자."
"잠시만 기다려! 들어오지마!"
옷 매무새를 다듬고 거울을 위 아래로 훝어본다. 폰으로 셀카를 찍었다. 상태도 괜찮아보이고 마음에 들었다.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정말로 크게 안도했다. 민영은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감상한다. 솔직히. 당장은 잘 모르겠다. 어울리긴 하는 것 같은데 현실의 패션과 워낙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이상하게 생각할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멈추고 박스에 집어넣어버릴까?'
하지만 그녀는 알고있었다. 안돼. 안돼. 그것으론 부족하다고. 민영은 한숨을 쉬고선 잠시 고민하다가 지희에게 전화를 걸기로 한다.